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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칼럼/스타1

시간의 벽 앞에 서 있는 서지훈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서지훈은 한때 4대 테란이었다.


임요환에서 이윤열로 넘어간 후 최연성이 막 떠오를 그 시기쯤.

아마 지금도 커리어와 영향력으로 따지면 임이최의 다음번에 위치할 테란이 서지훈인데.


전성기 삼종족 승률이 각각 66% 가량에서 머물 정도로
임이최를 제외한 '강한 테란'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테란이다.

OSL 올림푸스 우승, 04 WCG 우승, 그외 양대 메이저 무한 8강 회귀 본능.


당시 이윤열과 유대도 있었고 서로를 인정하는 라이벌 이었으나 상대전적은 안드로메다...
만나기만 하면 깨졌다. 반면에 최연성에겐 초반에 발린 후 바로 전적 역전.

임요환은 무력하게 무너졌었다. 그가 다전제 테란전에서 3:0으로 맥없이 무릎꿇은 유일한 테란이 서지훈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이게 서지훈의 네임밸류 업에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김태형 해설에게 업그레이드 김정민이란 소리도 들었는데
실상 1.07 때 정립된 테란의 정석 마인드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 낸게 서지훈이고

풀어쓰자면, 테란에게 검증된 가장 강한 타이밍인 중간 테크에서의 조합된 한방 순회공연이다.

서지훈의 당시 특징을 더 보자면 언제나 똑같은 장소에 똑같이 올라가는 건물들. 그리고 벙커러쉬의 빈도가 상당히 낮았던 것등. 빌드를 뒤틀거나 초반에 승부를 걸지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정교하게 짜여나가는 테란의 힘에 대한 신뢰가 엿보였다.

원골리앗 헬프의 개그팀플로 많이 까이기도 했지만 서지훈을 이해하는 유일한 팀플 파트너인 강민과의 조합에선 강민이 혼자서 두명을 버텨낼 동안 열심히 힘을 키워 1:2를 이기는 모습도 종종 보여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난 테란 중에선 서지훈을 가장 좋아했다.
난잡하지 않고 정제되고 제련된 예술적인 느낌이 있었기 때문.



서지훈은 당시 가능한 빠르게 앞마당 먹고 물량 트렌드에서
추가타(앞마당에 모인 후속병력)는 최연성보다 적었지만
한방 교전에서의 정교함은 이윤열보다 뛰어났다.
(...베슬컨도 한방교전 때 만큼은 정교했다.)

"니가 뭘하든 내가 갖출걸 갖추면 이긴다."

이게 서지훈이고
이게 퍼퍽트 테란 서지훈이고
이게 포커페이스의 서지훈이고
이게 비프로스트의 사나이 서지훈이고
이게 남자팬들에게도 종종 애정에 가까운 고백을 받은 서지훈이다.


당시 이윤열보다 서지훈을 높게 평가하고 배울것이 많다 한
아마추어 테란들도 종종 있었는데

양산형 테란들의 빌드는 최연성에게 빌려왔을지언정
마인드는 서지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특히 고인규)


또 CJ(구 GO)에서 끊임없이 테란전이 좋은 선수들이 태어난것도
전성기의 서지훈이 정석적인 연습상대론 더할 나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돌이켜보자면

테테전은 괴이하게도 운영이란 측면이 돋보였지만
(테테전을 제대로 볼 줄 모르기에 확언은 어렵다.)
테플전과 테저전은 늘 방식이 똑같았다.

다만 120%의 기량을 발휘할때의 서지훈은 한방병력과 드랍쉽이 조합되곤 했다.
(홍..홍진호!)

저그전에서 명성을 날린 서지훈이 과거와 달리 기묘하게 테저전에서 막장의 길을 걷고 있는건
테저전이 더이상 한방의 공식이 안통하는 시대기 때문.

마재윤의 집대성 이후, 테란이 저그를 이기기 위해선 저그의 방식을 차용해야 했다.

저그의 회전력을 무효화 시키는 한방은 3해처리가 봉쇄했고
초중반의 주도권은 뮤짤로 봉쇄 됐고
순회공연은 하이브 운영 기술의 발달로 봉쇄 됐다.

즉, 운영을 통해 배럭하나부터 정교하게 맞춰가고
전맵에서 확장을 통해 자원 소모 및 병력 교환율 계산을 지속적으로 해내가야 하는 시대.



테플전이 그나마 건재한것도, 메카닉 한방이라는 기본적인 틀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건 반대로 수준있고 머리있는 A급 토스에겐 늘 밥이 되는 서지훈류의 단점이 그대로 현대 테란에게도 발전없이 계승되어 현 테플전에서 테란 약세로 돌아선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대의 흐름을 지나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며 다시한번 메이저에 도전하는 서지훈은
내게 있어, '미학이 없다'는 테란에 대한 편견을 넘어 애정을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존재다.

서지훈은 변하고 있지만 그 변화엔 여전히 타인을 의식하는 조급함이 없다.
3류로 내려간 테란이 1급의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 CJ 2군에 기꺼이 내려가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이젠 웃는 모습도 간간이 보여주건만 무명의 선수가 자신을 무시하는 도발엔 무시로 갚는다.

서지훈이  맵-빌드-판짜기 선택이나 병력 동선 선택에서 최대한 머리쓰는 게임을 하려하는 데엔
선수의 마인드가 묻어나는 중후반 운영방식이 굳어져버려 바꾸기 힘든 자신의 '결'과
그동안 쌓여진 경험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동시에 충돌하며 작용하고 있다.

그 변화는 치열하면서도 고요하기에 그리고 양대 메이저란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에
처절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나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최대한 높인 테란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오래된 테란의 장인은
테란이 주류에서 밀려난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서지훈은 과거의 유물로서 그렇게 우리 앞에, 시간의 벽 앞에 서 있는 테란이다.








*짤방각색자는 KaKaRuYo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