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스포츠 칼럼/스타1

코지프스의 바위



신들은 코지프스에게 가파른 명예의 전당 꼭대기까지 끊임없이 업적 덩어리를 굴려 올리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기대받는 경기에서 커리어는 그 무게만큼 빠르게 꼭대기에서 다시 굴러떨어지곤 하였다. 그 무익하고 가망 없는 일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까들이 생각한건 일리가 있었다.

광메로스의 말에 의하면, 코지프스는 프로토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신중한 선수였다. 그러나 다른 설화에 의하면, 그는 종종 백치미를 보였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본다. 그를 아스트랄한 강자가 되게 한 동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첫째로 그는 저그를 욕보였다는 비난을 받는다. 저플전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마본좌는 인기 선수들을 핍박하고 저저전 결승을 남발하며 MSL에게서 사랑스런 흥행을 빼았았다. 저그의 약점을 알고 있던 코지프스는, 곰티비 3회 정복을 조건으로 마본좌를 끌어내릴 것을 제의했다. 천상의 노여움보다 지상의 혁명을 택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저그빠의 비난과 저그 포위섬멸의 표적이 되었다.

광메로스는, 코지프스가 테란의 화신을 보험 계약에 얽어맸다는 것도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먼저 생각하는 자는 다크와 아비터 때론 스카웃에 의해 능욕당하는 테란의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세번째 곰티비 로키산맥에 높이 생각하는 자를 급파하여 테란을 그 정복자의 손에서 해방시켰다.



또한 코지프스가 후로게이의 신이 되는 길, 본좌로드 실패 후 무모하게 삼저그 조를 시험해보려 했다고도 한다. 그는 토막으로 알려졌던 동네폭군에게 택까스톰에서 운영으로 맞짱 뜰 것을 명령했다. 코지프스는 막장으로 떨어졌다. 일반 저그와는 너무나도 어긋나는 원초적인 네오사우론에 훼손된 그는 제국으로 공양미를 받고 팔려가 반년 넘는 스막 지옥을 거슬러 코지프스 2.0 버전으로 돌아왔다.  

다시금 무대에서 팬들의 얼굴을 보고, 조명과 함성 그리고 연이은 승리와 우승의 맛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막장의 그늘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33업테란, 네우사우론 그리고 4겟드라군도 소용이 없었다. 또다시 여러 날 동안, 그는 양대리그와 프로리그, 그리고 군소리그들의 중심에서 살았다. 그러나 결국 때늦은 황신의 폭풍이 불어 뻔뻔한 그의 기쁨을 빼앗고는, 또다시 까임 속으로 밀었다.



코지프스가 아스트랄한 강자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이해하였다. 그는 그의 화려한 운영뿐만 아니라 그의 뜬금없는 몰락으로 말미암아 부조리의 영웅인 것이다. 숙명의 상성 플저전에 대한 멸시, 무관심에 대한 증오와 팬들의 기억에 대한 열정 그리고 과도한 주목이 불러오는 견제는, 끝없이 실력이 상향되는 리그에서 결국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념해야만 하는 형벌을 초래하였다. 이것이 지상의 정열을 위하여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대가다. 2.0 이후 버전 코지프스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전해진 것이 없다. 신화란 상상력에 의해 생기를 얻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코지프스의 신화에 있어서는 다만 무거운 업적의 바위를 들어올리고 수백 번 되풀이하여 그것을 굴러 올리려고 긴장한 한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찡그린 얼굴, 땀에 절은 마우스, 과도한 관심과 까임을 떠받치는 어깨, 패배를 멈추려고 버티는 난전, 끝내 GG를 받아내는 손 끝, 우뚝솓은 믿음직한 인간의 코가 보인다.  한이 없는 적과 깊이 없는 연습 시간으로 측량되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 때 코지프스는 커리어가 순식간에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며 이제 다시금 정점을 향해 끌어 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또 다시 까임으로 내려간다.



코지프스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정상에서 내려올 때, 중지하고 있을 때이다. 바로 바위 곁에 기진맥진 했던 이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거운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끝내 종말이 없을 고뇌를 향하여 다시 내려오는 것을 본다.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그리하여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 이는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정상을 떠나 산기슭으로 내려가는 순간 순간마다 코지프스는 자신의 운명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굴려올리고 또 내려갔던 바위보다 한결 강해져 간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그 영웅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완전한 성공의 희망이 뒷받침한다면 그의 고통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날의 2군들은 생애의 그날 그날을 노동 같은 연습에 종사하며, 코지프스에 못지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이 운명은 오직 의식을 갖게 되는 드문 순간에만 비극적이다. 신들의 프롤레타리아인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코지프스는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홀로 숙소로 돌아갈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의 고뇌를 이루었을 명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 시킨다.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의 삶을 향해 돌아서는 그 미묘한 순간에 코지프스는 자기의 바위로 되돌아가면서,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기억의 눈길 밑에서 통일되고, 또한 언제가 은퇴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이 되는 이 행위의 연속을 바라본다.

나는 코지프스를 산기슭에 남겨둔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무거운 짐을 발견하지만 코지프스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올리는 쉽지않은 성실을 가르쳐준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코지프스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