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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칼럼/스타1

송병구, 무결점을 향한 충동

낭중지추란 주머니속에 넣어둔 날카로운 송곳은 결국 밖으로 뚫고 나오게 된다는 말로서, 재능있는 자는 결국 두각을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실 이말은 결과론 적인 말로서 두각을 보이지 않으면 재능이 없다는것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송병구처럼 미완의 대기라던가,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도 드물것이다.
2005년도에 완벽한 기본기를 지닌 새파랗게 어린 토스의 신성으로 등장하여 2006년까지 별 발전없이 어느 단계에서 돌고 돌았던 송병구를 보며
삼성의 김가을 감독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만년 기대주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시대에 등장한 독기의 오영종이나 패기의 박지호나 모두 주머니를 뚫을 날카로움과 파워를 가지고 있던 선수들이다.
그건 잠재력이나 포텐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그릇을 채우고 흘러넘치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문제에 가깝다.


크고 넓고 둔하디 둔한 대기(大器), 프로토스에게 종가(宗家)란게 있다면 송병구는 그 종가 중에서도 적자라 할만한 그릇을 가진 선수다.
그 묵직함과 무게는 오히려 날카로움을 갖지 않음으로서 가치를 증명한다.

그릇을 꽉 채운 기량의 무게는 주머니를 날카롭게 뚫는것이 아니라 주머니 그 자체를 찢어 버리며 존재를 드러낸다.
그것이 2007년도의 송병구라 생각된다.


성장이 느리다는것은 송병구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지만 최고의 미덕이기도 하다.
무결점을 지향하며 어느것하나 놓치지 않고 폭발적인 성장세로 건너뛰는 부분없이 여기까지 채워왔다는 애기다


송병구는 여전히 미친듯이 승부욕을 불태우지 않으며 게임도 날카롭지 않고 무난하다.
그러나 날카로운 날과 예봉이 없는 거대한 바위를 무엇으로 꺾을 것인가?






완벽한 기본기가 가장 돋보였던 신인 시절의 송병구지만 그때 이미 운영이란 측면에서 그가 대성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모든 유닛을 잘 활용하며 전투를 반복하면서도 특정한 타이밍이 없이 경기를 극후반으로 이끌고 가는것에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그는 넓은 시야와 맵 전체에 퍼져있는 유닛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기본기로서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며 한순간도 우위를 놓치지 않는 숨막히는 압박으로 항복을 받아내 운영의 송병구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현재 그가 가장 주목받고 있는 테란전을 통해 그의 스타일을 짚어보자.


임성춘 시대 프로토스의 고전적인 고수들은 판을 크게 가져가면서 맞춰가는 플레이를 주로 했었다.

많은 정보를 내주지 않으며 정작 자신은 옵저버로 상대방을 지켜보며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혹시모를 도박적인 수에 대해 방어 준비로 자원을 낭비시키고 초반에 좀더 빠른 테크, 좀더 빠른 병력생산을 하도록 유도하고
도발적인 공격에 대해 정보전을 통한 침착한 대응으로 손해를 누적시키면서
한발 앞선 병력, 한발 빠른 업그레이드, 완벽히 조합된 병력으로 중앙의 최후결전에서 완승을 거두는게 그 스타일이었다.

테란들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어하고 이기거나 지거나 진땀을 빼게 만드는 이런 스타일은 테란의 메카닉이 지상전에서
이윤열 이후 동수의 멀티를 가진 프로토스 지상군을 괴멸시킬 수 있다는게 입증되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그 이후의 프로토스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테란전에서 승부를 봤다.
지속적인 전투와 물량으로 타이밍을 만들었던 박정석, 초반의 컨트롤 이득으로 갭을 벌리려 했던 박용욱,
전략과 견제를 통해 후반우위를 도모했던 강민, 그리고 패스트 캐리어에 천착한 기욤,
박지호와 오영종의 경우는 한순간의 폭발적인 물량 타이밍과 발업질럿의 빠른 병력충원으로 승부를 본 스타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전태규가 보여준 좀더 완벽한 수비와 진보된 확장력을 바탕으로 시대에 적응한 고전적인 운영의 미학은 역설적으로 꽤 인상깊었다.
모든것이 다 완비된 후 템플러가 조합된 한방병력으로 전장을 휩쓸었던 전태규는 베히모스(전설상의 거대한 육상동물)란 별명이 정말 잘 어울렸고
클래식컬한 프로토스 운영이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해 내었던 것이다. 문제는 힘으로 그것조차 뛰어넘은 최연성 스타일이었다.]



송병구가 테란전에서 변화한 모습은 이런 고전적인 스타일이 한계에 부딪히며 발전한 역사와 비슷하다.
송병구가 완벽한 기본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해내고 모든걸 앞섰음에도
닥치고 수비한뒤 200채운 3/3업한 메카닉에 휩쓸리는걸 반복하자 송병구는 한동안 테란과의 전면전을 피하는듯 싶다가
어느 순간부터 캐리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빠른 캐리어 의존종은 선수를 잘못봤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는데
완벽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해도 테란의 미학을 이해한 선수를 끝장낼 피니쉬가 안된다는 면에서 사실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답이 없으면 캐리어는 가야만하는 유닛이었던 것이다.
2006년도의 그 많은 시행착오 끝에 무난한 운영을 통해 안정적으로 캐리어를 공중에 뛰우기 시작하자
테란중에 더 이상 그의 적이 없었다.


그 운영의 요체는 뼈대에선 클래식컬한 프로토스의 문법을 따르되 옵저버후 투리버를 통한 시간벌기를 곁들이며 멀티를 꾸준히 굳혀가고
지상전에서 공멸 이상의 효과를 낼수 없는 테란이 수비적으로 돌아선 상태에서 캐리어를 타는 방식이다.

김태형 해설위원 주장하듯이 가장 이상적인,
그러나 테란에게 지속적으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송병구의 기본기와 운영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나리오...




테란과의 최종후반부에서 가장 뛰어난 마무리 능력과 웅장한 스케일을 지닌 고전적인 미학의 프로토스 이것이 바로 송병구다.





고전적인 타입의 프로토스 초고수들이 그러하듯이 송병구 역시 플플전에서 가장 먼저 기복없는 강력함을 드러내었고
테란전에서 절륜한 경기력으로 돋보였으며 저그전에서 좋은 경기 내용에 비해 낮은 빈도의 승리를 반복하고 있다.



저그전에서는 그의 뛰어난 운영능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저플전에서
지상군으로 맞춰가는 묵직한 운영은 저그에게 너무많은 시간과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송병구의 저그전중 가장 빛나는 수비형 프로토스는 운영으로 승부를 보는, 맵을 전체적으로 쓰고 복잡한 유닛의 컨트롤을 끊임없이 다뤄가며 최종후반의 장기전까지 가서야 경기를 끝내는 방식이고 송병구의 장점이 집약되는 운영법이지만, 쉽게 남용될 수 없는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강민보다도 더욱 뛰어난 수비형 프로토스를 구사함에도 그의 저그전을 마냥 밝지만은 못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송병구의 숙제이자 동시에 프로토스의 숙제이기도 한 문제다. 단 한 남자를 빼 놓고는 말이다 .






여러모로 송병구는 프로토스 종가(宗家)의 맥을 잇는 대기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동기들이 차례로 리그를 호령하고 명성을 빛내며
스멀스멀 사려져 가는 뒤에도 이제 기나긴 인내를 바탕으로 천하의 대권을 넘보는 프로토스 종가의 당주로서 우뚝 서 있다.


흐뭇하지 않은가, 우리의 어린 주군은 어느새 이만큼이나 성장해 있던 것이다.




선대 프로토스 라인의 어떤 계보에도 속하길 거부하는 고아이자 거칠것없는 혁명의 철검을 휘두르는 김택용과
프로토스의 정수 그 자체인 클래시컬한 단단한 용병술을 기반으로 전장의 대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인 송병구


어느 쪽이든 좋다, 그들이 진정으로 강하다면 리그의 최후에서 종종 그 둘은 맞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둘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프로토스의 미래를 열 것임을 우린 확신할 수 있다.



전통적인 원칙하에 그에 반하는 논증이 충돌하고 변증법적으로 보완되 끊임없이 진보한다
정반합(正反合)...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다시한번 프로토스 진화의 열쇠를 손에 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