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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칼럼/스타1

김택용, 강요된 평화가 부른 혁명의 철검

 
한 선수의 한계를 인정한다는것은 그에 대한 애정을 접는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강민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마재윤과 벌인 제 3차까의 성전은 늘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그가 부끄럽지 않은 과거를 쌓아올렸고 또 그의 사명이 끝났기에 이제야 자기자신의 경기를 즐길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프로토스의 영광과 미덕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힘주어 말할 수 있는것은 이 종족이 그만큼 힘든 시간을 견더왔기 때문이다.
잊혀진 왕과 사라진 선지자의 시대를 지나 영광의 삼대 프로토스 그리고 패기넘치던 신삼대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한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그 거대한 족적은 다시한번 매니아들을 감흥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시대가 택한 저그 마재윤, 강인한 테란군주들의 드높은 성채도 나지막한 돌담처럼 보이게 만든 위대한 독재자가 있는 시기이기에,
프로토스에게 사상 유래없는 재앙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였기에 다시한번 부활한 광통령과 시대를 제패한 마틀러와의 성전은
차라리 축제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축제는 마재윤의 독주를 받아들이고 또 프로토스의 약함을 인정함으로서 성립한된 역학구조 였다.
팍스 로마나 시대에 성행한 검투경기처럼 우리는 절대자가 선사한 유흥에 몸서리치며 흥분했다.
사람들은 모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진정 평화로운 시대였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명의 프로토스가 나타났다.
제1차 곰티비 MSL 4강 vs강민 3:0, 결승 vs 마재윤 3:0

마재윤에게 5전3선승제에서 프로토스가 이길 확율이 2.69%..
경악할 시간조차도 부족했다.



그 충격과 공포라기 보단 뜬금없음과 난데없음에 가까웠던 결승전이 있은뒤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가 행한 이중의 쿠테타 후 그는 서서히 그러나 거침없이 거대한 스타의 판도를 일주하는 대장정을 걷고 있다.




이 아래에 써 내려가는 기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선수를 알고자 노력했던 보잘것없는 인식의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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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용이 과거의 프로토스와 확연히 구분되는 점을 들자면


첫째, 저그를 극복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래된 프로토스 매니아라면 이말이 갖는 무게를 이해할 것이다.


지금까지 저그에게 어느정도의 성적을 낸 프로토스는 적지 않았다.
초창기의 김동수, 영웅으로 갓 불렸던 시기의 박정석, 삼대프로토스와 공존했던 시절의 전태규,수비형을 완성한 당시의 강민등
(그리고 투박하지만 묘하게 강했던 김환중의 저그전)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프로토스도 아니었고 저그가 두려워한 프로토스도 아니었다.
물론 강민이 원게이트에 이어 더블넥을 정립한뒤 수비형 프로토스가 완성된 시기부턴 처음으로 저그가 플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그 역시도 최정상급 저그를 상대론 승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아니 무던히도 패배했다.


마재윤이 결승에서 붙는  김택용에게 한 말은 "문제라면 저를 상대로 프로토스이신거?" 라고 말한것은 그런 일반적 의식을 잘 보여주는 실례였다.
단판제에서 저그를 꺽는 경우는 자주 있긴 헀지만 다판제에선 프로토스가 저그에게 갖는 한계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테란이 메카닉을 정립하고 플토와 대등한 싸움을 시작한 다음부터 테란이 패권을 잡았듯이
저그 유저중에서 테란을 극복한 걸물들이 등장한 이후부터 저그의 전설이 시작된 것처럼

상성종족의 극복이 없이는 프로토스는 드라마는 쓸수 있어도 패권을 쥘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데, 김택용은 저그를 극복했다. 마재윤에게 압도적으로 이긴것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 내용의 충실함과 승률의 탄탄함에 더해 무엇보다 김택용은 저그전을 즐긴다.




둘째, 아슬아슬한 승리가 적고 상대를 압살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토스가 인기가 많은 주된 이유중 하나는 항상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거나 긴박한 대치상황에서 치열하게 싸운뒤에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승률과 큰 상관없이 지금까지 대부분의 프로토스 선수들은 경기 내용에 항상 긴장감이 흘러 넘쳤다.
오죽하면 프로토스가 이기는 경기중에 재미없는 경기는 없다라는 말이 나왔겠는가(플플전은.. 제외하자)

그러나 김택용은 저그를 포함해서 압도적으로 쉽게 상대를 이겨버린다.
프로토스 유저 치고는 보기 드문 그 쉬원쉬원한 경기 내용은 유쾌하긴 하지만 큰 의문점이 아닐 수 없다.

"왜 김택용은 다르지?"




셋째, 얼굴이 곱상함에도 불구하고 우승도 하고 플레이도 가볍지 않고 묵직하다.
이건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절정의 프로토스 고수는 선이 굵거나 무난해야한다는것은 남자의 종족 프로토스에겐 숙명이었다.
그러나 이건 간단히 알 수 있는 문제인데 김택용의 나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연륜(이라 쓰고 노화라 읽는다)이 안느껴저서 그런것이라 여겨진다.
성춘횽도 어렸을땐 꽃미남이라 불렸다지 않은가. 김택용의 나이가 스물을 넘기 시작하면 얼굴에 차차 굵은선이 그어지고 풍채도 파워풀해질 것이다.







김택용의 장점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자


소수유닛이나 게릴라 컨트롤이 뛰어난가? 물론 준수하다 그러나 명인 김성제는 그보다 더 섬세하다

전투를 잘하는가? 나무랄데 없다 그러나 경기는 져도 전투는 무조건 이기는 윤용태에 비할바는 아니다

전략이 뛰어난가? 전략성도 훌룡하고 빌드도 잘짠다 그러나 강민처럼 허를 찌르는 전략을 자주 써먹지는 않는다.

힘싸움에서 유닛비율을 적절하게 맞추는가? 뛰어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최적의 유닛비율을 절대 흐뜨리지 않는 박정석이 있다.

심리전을 교활하게 이끌줄 아는가? 영민하다. 그러나 임요환과 최연성을 동시에 물먹이는 오영종의 독기가 좀더 치밀히다.



따지고 보면 무난하게 모든걸 다 소화하긴 하지만 특출난것은 없다.
이런 밸런스형 유저는 어떻게 보면 프로토스에서 꽤 흔한 편이다.


단순한 물량일까? 그러나 후반 물량만으로 따진다면 박지호도 그만큼은 나온다


남은것은 운영인데 김택용의 운영은 송병구와 필적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타입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이 둘의 운영은 정말 짜임새있다.





김택용이 밸런스가 매우 적절하고 물량이 대단하며 운영마저도 무척 뛰어나다고 해도
이것이 마재윤을 3:0으로 잡고 그 뒤에도 계속해서 이겨나가며 저그를 우습게 알고 압도적인 경기내용으로
양대리그 승률 1 위를 찍는 이유인가라고 묻는다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운영의 송병구를 들었었는데, 사실 병구도 위에서 열거한 장점은 대부분 다 갖추고 있고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






김택용은 고아다, 그것은 그가 프로토스의 어느 계보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대의 프로토스들이 쌓아올린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단독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토스에게 있어 전략적 선수(先手)의 중요성을 가장 임팩트있게 부각시켰고
그 이득을 형(形)이라 불리는 매크로컨트로롤로 치환하고 다시 결정적으로
세(勢)라 불리는 압도적 우위의 상황을 만드는 세련된 형태의 경기 형태를 정립한것은 강민이다. *주1)
그리고 난 전략이 가미된 하이테크 유닛 견제후 게이트 물량이
플토가 할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며 플토의 장점에 기반한 운영방식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김택용에 대해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건
주도권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능력이 역대 최강의 기량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보여주는 전략적 움직임은 기발한것은 아니지만 유닛들의 움직임은 딱 부러지게 통제되어 있고
조그만 주도권이라도 바로 물량적 이득으로 환산하는 효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물량은 멀티와 더 많은 물량을 부른다.


그 간격, 주도권을 쥐는 움직임과 주도권을 물리적 수치로 환산하는 능력, 그리고 그걸 '이길 수 있는 환경'으로 승화시키는
연결고리 사이사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즉, 김택용의 물량이 많은것이 아니라 빠르다. 상대방이 체감하는 물량이 빠른것이다.
.

위의 간격과 연결된 애기지만 그렇게 빠르기 위해선 맵상에서 총체적인 컨트롤이 필요해진다.
마재윤과의 결승에서 그는
초반부터 견제하고 정보를 판단하고 건물을 올리고 유닛을 뽑고 전투를 치루는 행위를 거의 동시에 해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1,2,3 경기 모두 마지막 순간에 제2 멀티를 뛰면서 커세어가 활보하고 다크가 빈틈을 파고들고 물량을 뽑으면서 전투를 벌였다.(이게 세다)
아무리 주도권을 쥔쪽이 움직임에 있어 자유롭고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은 반응하는 쪽이 불리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나쁜것이다.

마재윤은 신기(神技)를 가진 저그고 그 예측력은 심안이란게 진짜 존재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지만,
그도 한번에 하나의 일에만 대처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게 김택용에게 마재윤이 약한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나 이에 우선 선행되는것은 견제 후 물량의 양과 스피드가 마재윤의 계산을 뛰어넘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게임에 이기기 위한 요소는 많고도 많지만, 군쟁(軍爭)이란 측면에서 가장 기본은 상대보다 많은 병력을 보유하는 것이고 결전의 순간에 강한 병력을 바탕으로 적의 약한 병력을 상대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뼈대고 이 흐름을 잡아쥐는건 오락을 잘하는게 아니라 전쟁을 잘하는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데에는 프로토스의 장점과 특징위에 기반한 이기는 박자를 이해하는 머리와 프로토스치고는 매우 빠른손의 결합이 전제된다. 어려운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쉬운 방법에 의지해서 이긴다. 이것이 프로토스가 그렇게 쉽게 상대를 압살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더해서, 플토의 저그전은 실상 주도권과 그 유지의 문제고 김택용의 가장 큰 장점이 빠르고 강력한 주도권 장악에 있는 이상 저그전을 그토록 좋아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도권을 뻇기지 않는 프로토스에게 저그의 유닛들은 물렁하고 잘터지는 단백질 샌드백에 불과하다. 가림토식 하드코어가 통하던 시절, 그리고 박정석이 저그전에서 주도권을 잡는 방식이 유효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강민은 전략을 짜고 그 이득을 매크로컨트롤로 환산하고 다시 이길 수 있는 상황으로 몰가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힘싸움과 회전력이 약하기 때문에 전략적 선수에서 세를 이루는 사이에 딜레이라는 약점 또한 있었다. 그 딜레이를 매우기 위해서 전략과 정밀한 컨트롤의 날을 갈았지만 그것조차 안통하는 상대가 나타난뒤 또 반응속도의 하락과 시력의 악화가 겹치면서 최강의 자리 바로 앞에서 물러나야 했던것이다.

박정석은 어떤가, 최강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 '정직하고 안전하게'만 싸우는 탓에 상대적으로 적이 약하고 자신이 강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기민한 스텝을 밟을 줄을 몰랐었다. *주2)



김택용의 계보를 프로토스의 역사에서 찾는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를 그답게 하는 재능을 갖추었던 프로토스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 선배인 박지호의 카리스마적인 잔영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신이다 )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날라처럼 지휘하며 리치처럼 전투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불분명한 계보에도 불구하고 김택용의 모습에서 과거 프로토스가들이 리그를 누비며 갈고 닦은 기술들을 보는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김택용이 현재 가진 그 압도적 강함은 선대의 선배들에게 빚진 부분으로 완성된 것이므로..
나는 그가 진정으로 선배들을 넘어서길 바란다. 그리고 그건 비단 실력적인 부분만은 아니다, 존경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된다면 플토빠로서 더이상의 한이 없겠다.



과거는 너무도 길었다. 한은 너무도 깊었다. 그 옛날 비참하게 치였던 프로토스의 속죄를 명한듯이 보였던 사내도 결국 세월과 함께 늙어갔다.
우리는 여기 지금 진정 저그를 극복하고 프로토스의 강함보단 그 미덕과 영광을 빛낼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일어선 한 후배의 대장정을 지켜보고 있나니...  
조금더 오만해도 좋고, 조금더 파격적이어도 좋다. 이 시대가 강요한 것이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었으므로.


평화는 압제의 다른 이름이다. 누가 프로토스는 약하다고 정의 내렸는가? 누가 프로토스는 저그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정했는가? 누가 마재윤을 이 시대의 질서라고 인정했는가? 그 누가 프로토스에게선 본좌가 탄생할 수 없다고 못밖았는가. 우리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미묘한 밸런스라는 미명하에 압제에 시달려온 프로토스에게 강요된 질서는 굴욕이었다고, 그를 보라 강요된 평화가 부르는것은 혁명의 철검 한자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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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모공(謨攻)-형(形)-세(勢) 이 셋은  손자병법에서 나오는 전쟁의 원리들, 자세한것은 강민에 관한 예전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주2)그 아슬아슬함과 처절함이 영웅의 최대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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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부끄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