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온.
1.질레트 세대
데뷔는 04년 질레트 배였다.
듀얼토너먼트에서 임요환을 꺾고 올라왔는데 그분이 올라가지 않은 OSL이 과연 흥행이 될까하는 우려와 함께 저그의 숙적 임요환을 이긴터라 주목과 적절한 까임을 받았다.(동영상의 앳된 그분이 귀엽다)
리그는 흥행했고 당시의 뉴페이스 게이머와 유입된 팬들은 이후 질레트 세대라 불렸다. 스타리그 제2부흥기였다.
2. 맵.
질레트 배 맵은 머큐리, 남자이야기, 레퀴엠, 노스탤지어였다.
저그들이 죽쓴 리그였고 저테전 맵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레퀴엠은 아직 미네랄 넘어가 3가스가 개발되기 전이라 했다하면 저그가 발렸다.
노스탤지어는 밸런스가 좋았다가 오래 쓰이자 밸런스가 무너졌는데 앞마당에 가스가 없었다. 최진실이다.
머큐리는 본선에 바로 쓰였는데 그 당시는 테란이 많이 앞섰다.
3. 4드론
기억이 맞다면 16강 박성준vs한동욱 전이 메이져에서 최초로 4드론이 쓰인 경기였다.
답이 없는 맵에서 경기를 앞두고 게임전 박성준이 하태기 감독에게 물었다.
"재밌는 경기를 할까요, 이기는 경기를 할까요" "이기는 경기를 해라" "ㅇㅇ"
그리고 4드론을 질렀다고 한다.
4.지구최강의 서빠
8강 상대는 서지훈이었다.
서지훈은 늘 박성준 앞에서 메이져 상위리그에서 좌절했는데, 박성준은 서지훈을 참 좋아했더랬다.
최강 서빠, 혹은 최강의 서타르 츤데레 박성준.
스갤의 츄잉껌이 박성준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5. 괴물 사냥꾼
4강 상대는 최연성이었다.
당시가 3대 본좌 최연성의 최전성기였다. 팀리그 무적포스,엠겜 2연패,80%는 넘는 총합 승률, 데뷔전을 제외하곤 저그전 무패의 기록. 저그는 최연성 앞에 하등 벌레에 불과했다.
박성준과는 루키시절 예선에서 6번 붙은 경험들이 있고 한번도 지지 않았다.
스코어는 3:2
4경기까지 내내 몰아쳤고 5경기에선 배를 째고 쫄은 최연성을 럴커-울링-디파 스웜으로 끝냈다.
5전제 내내 최연성은 수비만 한채 크립한번 밟아보지 못했다.
이후 저그는 내 라이벌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최연성은 06 WCG에서 박성준을 이렇게 평했다.
"내 저그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 선수다"
4강의 충격 후 커뮤니티가 들끓었고 투신이란 닉네임을 엄재경 해설이 공인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i-tv 랭킹전 결승에서도 최연성은 박성준에게 패배하며 한동안 침묵기를 갖게 되었고
시대를 지배하는 제 3대 본좌의 공백기에 삼신전이 발발했다.
6. 저그 혁명
동영상에서 보이는 박성준의 전투력과 컨트롤은 당시에 저그의 혁명이었다.
이 컨트롤과 전투운영을 익히기 위해서 하태기 감독과 상의해 박성준은 학교를 자퇴하고 1년 넘게 운동을 병행하며 방에 처박혀 서형석코치와 트레이닝을 했다. 서형석 코치와 박성준은 저테전 상성을 무너뜨리는 방법들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물들이 저럴컨과 뮤탈뭉치기 그리고 마린을 끊어 먹은 숫자로 앞마당을 뚫을 타이밍을 재는 방법이었다.
박성준은 스타크래프트 선수가 되기 위해 인생을 걸었다.
저글링컨 그리고 럴커를 대고 저글링으로 마메의 예상 퇴로를 감싸는 방법론 및 컨은 당시 2햇 앞마당 게임전개 구도에서 테란으로부터 마메의 압박을 해방시켰다. 뮤탈뭉치기는 수동이었다. 오버로드 뭉치기가 개발되기 전까지 박성준만이 사용한 저그본좌의 절기였다. 뮤탈이 운영용이 아닌 병력과의 맞상대, 그리고 테란의 scv를 잡아 지속적으로 가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된 시작점이었다.
이외에도 저그의 해처리-레어-하이브의(그중에서도 특히 레어) 교전컨과 전투구도의 발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전성기에 최연성 및 기타 테란을 잡은 주요 빌드는 2햇후 본진 4햇 저럴뮤타 한방콤보 였다.
박성준에게 코치가 주문했던 것은 컨이나 전투 운영뿐만이 아닌 극단적인 자신감도 있었다. 살펴보면 연마 중의 박성준 예선 기록은 패배로 점철되어 있다. 대부분 꼬라박다가 패배했다. 공격적인 저그가 파상적인 기세가 없으면 무엇을 하겠냐만은 트레이닝이 완료되지 않았다 해도 이미 6연속으로 진 상대에 대해서조차 두려움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전투와 컨트롤에 대해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투신이라는건 스킬의 단련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다.
그러나 오만한 자신감이 자신에겐 기세를 상대에겐 두려움을 안겨줄지는 몰라도 정확한 상황 판단엔 장애가 된다. 오만함은 양날의 칼이므로 더더욱 절실한 정확한 판단을 위해 필요한건 순수한 정보다. 초창기에 잘 드러났듯이 박성준은 언제든지 정보 취득에 열을 올렸다. 초반 온맵을 휘젓는 저글링 이라던지 맵을 거의 밝혀놓다시피 하는 유닛배치라던지 아니면 테저전에서 바득바득 상대진영에 우겨넣는 유닛 이라던지. 투신시기 박성준은 당대의 어느 저그보다도 정보 취득에 집념어린 천착을 하는 저그였다. 본좌시기 마재윤도 정보 획득에 집중했고 더해서 작은 단서로도 해석능력이 아주 탁월했다.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저그 발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7.투신 전설
결승은 박정석, 스코어는 3:1
결승에서 박정석은 단 한번도 투겟을 시전하지 않았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05년도 까지 박정석이 저그와 전투압박식으로 정면 병력 소모전만 해서 승리를 장담못하는
유일한 저그가 박성준이었으나 그래도 해볼만 했다.
박성준의 플토전 전적은 당시까지 좋지 않았기에 박정석의 우세를 점친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후엔 프로토스의 악몽이 되었고 클래스가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대 프로토스전은 컨과 엇박자 타이밍으로 농락했고 고전중의 고전인 사우론 저그에 바탕을 두었다.
저그의 첫 메이저 우승이었다.
8.투신의 스타급센스
순서대로
vs 송병구in 레퀴엠
수비형 프로토스로 프로리그 큰무대에서 태민 마재윤을 무릎 꿇린 송병구
그러나 박성준은 이전에 버로우 히드라로 셔틀 잡고 관광했었다.
vs오영종in 레퀴엠
본진에 밀봉당한 원가스 상태에서 뮤탈-오버 속업/수송업 다하고 오영종의 본진을 급습하고 포위를 풀고 이겼다. 저래도 토스가 지다니!
vs임요환in 레퀴엠
3연벙으로 저그의 공적이 된 그분의 장인 벙커링.
박성준은 드론컨으로 가뿐하게 막아내어 화제가 되었..이 아니라 콩이 까였다.
한편, 3연벙 당시 임요환은 박성준과 연습했다.
당대 저그 최고의 컨트롤러인 박성준도 연습상황에서 알고 막았음에도 당시 방어율은 반반으로 나왔다.
vs최연성in인투더다크니스
럴커 대부대로 덮치고 뒤에선 스컬지 떼가 사베를 저격.
손느린 연성이는 베슬컨 하다가 마메가 피떡이 되었다.
주병력 교전에서 마메컨 강제후 스컬지 사용 간격은 박성준 이후 더 긴밀해졌고
간격이 거의 동시에 이뤄져 파괴력이 강화 되었다. 저그의 교전병력이든, 스컬지든.
전성기 전투구도는 늘 죽여줬다.
vs박태민in 노스탤지아
박성준의 컨트롤 혁명은 저그전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수동 뮤탈 뭉치기로 다수 스컬지 떼를 자유자재로 요격해낸 저그가 박성준이었다.
조용호를 위사한 소울저그들의 건맨 뮤탈로 저저전에서 스컬지의 활용 영역은 줄어들었고
박성준 이후 스파이어 타이밍을 재는 저글링-스커지가 아닌 다수 스커지 체제는 저저전에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이 대회는 kt-ktf 프리미어 풀리그 형식 상금리그였는데 꽤 대규모 대회였으나 정식대회로 발돋음 하진 못했다.
결승이 박성준-박태민 저저전이었다.
박성준-이윤열-박태민이 최강을 놓고 겨루던 삼심전 시대의 주요무대 중 하나다.
vs박정석in 루나
포톤박고 커세어 뜬 토스를 상대로 뮤탈-스컬지로 한번에 제압!
박성준의 컨과 엇박 타이밍을 잡는 능력은 토스를 상대로 공포와 함께 고민을 안겨주곤 했다.
막기도 어려운데 막아도 막은게 아냐~
이 전략은 컨 좋은 저그는 지금도 종종 쓴다.
이제동도 07 에버 결승에서 송병구 상대로 다진 카트리나 경기를 이 방법으로 역전했다.
vs이윤열in 알포인트
8배럭 치즈 벙커링이 제대로 들어가 앞마당이 날라갈 상황.
박성준은 드론과 저글링을 테란 본진으로 달리는 선택을 한다.
박성준다운 판단이었다.
이윤열 GG. 이후 드론링으로 불림. 8배럭 치즈 벙커링은 그후 사용빈도가 줄었다.
9.05 에버배.
동영상 중 한 경기만 소개하자.
16강 박용욱이 레퀴엠에서 하드코어로 박성준을 묵사발 만들고 앞마당 완성시킨 후
드라리버로 게임을 굳히게 되는 순간, 본진으로 셔틀리버가 빠져 타격하는 걸 확인하고 올인러쉬를 퍼붓는다.
딱, 한타이밍으로 이겼다. 욕나오는 장면.
10.이병민과의 결승
5경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3햇이 강제되는 포르테에서 선팩 조이기에 게임이 기울었으나
당대의 수준을 몇단계나 상회하는 뮤탈컨으로 마린을 끊어먹는 운영을 보이며 승리했다.
OSL에서 테란상대로 저그를 이긴 첫 대회였다. 당연히 콩빠는 또 아쉬워 했고 콩까는 또 콩을 깠다.
테란이 발전하고 맞춰가기 전 박성준 오리지날 스타일의 테란전이 통한 마지막 대회였다.
온게임넷은 맵을 불리하게 만들어도 박성준이 계속 결승에 오르고 또 우승하자
다음 리그부턴 대놓고 저그를 맵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박성준은 결승에 올라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박성준 때문에 저그들이 죽어나가요!"
칭찬이라면 칭찬이고 합리화라면 합리화다.
그후 저그는 오래오래 OSL에서 우울했습니다. 마재윤이 나타나기 전까지.
11.그리고 그후
박성준은 이후 1번더 1차 신한은행 05~06 결승에 올라가서
최연성과 맞붙었고 3:0으로 셧아웃 당했다.
이윤열과는 05 에버배 전 04~05 아이웁스 결승에서 붙은 적이 있다.
3:0 셧아웃이었다.
이윤열은 박성준이 드론을 넉넉히 채운 뒤에야 전투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는걸 간파하고 천재적인 타이밍으로 눌렀다.
이윤열은 박성준의 천적이었다. 삼신전 프리미어 정도를 제외하곤 늘 박성준에게 우세했다.
반면 홍진호는 이윤열과 대등했다. 홍진호의 타이밍 감각과 라바조율은 이윤열의 천재성에 버금갔기 때문이다.
최연성 때는 에버05 이후 맵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했고 최연성은 박성준의 버릇들을 완전히 간파한 후였다.
결승에서 맵은 당일날 테란에게 유리한 순서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뭐 우연이겠지만.
최연성은 본인 입으로 저그와 라이벌이 될 수 없다 했지만 저그라이벌이라 넌지시 물으면 아마 마음속으로 박성준을 가장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 뒤론 기구하고 불운한 슬럼프의 나날들이었다.
이후 박성준은 엠겜히어로에서의 불화로 인해 웨이버 공시를 택하고 무주공산에 뜬 상황에서 서형석 코치의 적극적 노력에 의해 T1으로 그리고 T1 감독-코치진 물갈이 개편후 쫓겨나다시피 소울로 팀을 옮겼다.
T1과 박성준의 관계는 묘한 데가 있다.
기업 T1은 박성준의 질렛 우승 직후 영입을 의뢰했으나 하태기 감독이 몇십억을 내놓으라며 면박을 주었고
T1은 화를 냈다. 대신 명코치 서형석을 영입한다. 이후 무스폰 POS는 박성준 효과와 함께 MBC게임단을 스폰으로 잡는데 성공한다.
서형석 코치의 이적 후, T1테란들의 대 박성준 그래프는 패배 곡선에서 승리 곡선으로 변화했다.
박성준의 T1 입단식에서 T1 실무자들은 팀우승을 위해 공헌하겠다는 박성준을 그리 반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프로리그 무스폰 POS시절 박성준은 상금을 팀운영비로 쓰기도했고 또 하루에 3게임을 뛰며 혹사하다시피 봉사했다.
그러나 얼마나 정당한 대우를 팀성공의 공신으로서 받았는진 모르겠다.
이 바닥과 팬들 역시 그를 얼마나 그가 세운 업적과 그가 준 감동에 맞게 대우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도 그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이글에서 나마 사과를 드린다)
05 에버 스타리그 뒤, 박성준은 게이머를 시작한 것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밝힌 적이 있었다.
박성준이 가진건 실력과 실력을 믿는 오만함 뿐이었다. 늘..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외는 자신을 인정케 할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오만함이 때론 불화를 일으켰으나, 누구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모든게 지나가고 소울 금은동 감독의 관리 아래서 부활해 08년 에버배 결승에서 3:0으로 도재욱을 잡고 그리고 그리고 골든마우스를...
PS.본좌론.
이 바닥에서 본좌란 말이 처음 등장한건 박성준 때였다.
전성기 랭킹1위였던 박성준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다.
지금과 같은 함의는 아니고 '저그의 본좌'로 인식되는 용어였다.
저그 선수들은 박성준을 경외했고 그가 예선에서 경기하면 옹기종기 모여 뒤에서 그의 경기를 관람하곤 했다.
이후 마재윤을 기점으로 본좌론이 정립되면서 박성준은 준본좌에 위치하게 된다.
**동영상은 수많은 스타 명 동영상을 만든 XellOs_PlutO님의 작품이다.
이제는 활동하지 않지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