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이란 내우와 스타크래프트2 발매라는 외환을 맞은 작금의 e스포츠판은 꽤나 어수선하다. 그러나 열정이 있기에 이 바닥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닥을 지탱해온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열정을 살펴보자.
프로게이머로 가기 위해선 통과해야할 관문이 몇 단계 있다.
우선 초등학생~고등학생 연령대의 게이머는 배틀넷(게임&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블리자드사 사설 서버)에서 실력으로 명성을 쌓은 후 30~300명의 인원 폭의 유명 ‘클랜’(혹은 길드)에 테스트를 통해 들어가며, 클랜에서 프로게이머를 겨냥하는 사람은 학교를 자퇴(보통 고등학교)하고 클랜사업인 ‘숙소’라고 불리는 단체합숙소에서 준비를 한다.
이 합숙소는 월 40~60만원의 입주비를 받는 10~15인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40~60평 너비의 오피스텔 등의 건물이며 밥, 물, 김치 등으로 구성한 하루 세끼와 연습용 컴퓨터를 제공한다. 때론 운영적자를 이유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도 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클랜숙소도 있다.
관리자는 건물과 연습 기록부를 제공할 뿐 지망생을 제대로 돌보진 않는다. 하루에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연습을 하는 것이 권장되며 경우에 따라선 AM 3:00에 잠들고 AM 7:00에 기상해 연습을 계속한다.
프로 지망생들이 굳이 클랜 합숙소에 드는 이유는 클랜장의 인맥을 통해야 프로게임단 연습생 테스트를 중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준프로 자격증을 따기 위한 커리지매치를 준비하며[연평균 106명이 획득] 동시에 각 11팀(공군 ACE는 제외) 테스트를 받아 프로게임단 온라인-오프라인 연습생으로 들어가 연습상대를 해주는 일을 한다.
프로게임단들은 1군-2군-3군(온라인)으로 구성된다. 온라인 연습생들은 2군 연습생들이 숙소에서 나갔을 때 채워질 수 있는 예비 명단이다
이후 드래프트를 통해[연평균 75명] 팀에 입단되면 정식 2군으로 편입되고 1년의 훈련을 더 거쳐 주전을 선발한다. 2군 환경은 코치의 관리를 제외하면 클랜 숙소보다 조금 나은 정도며 밥, 물, 김치, 간장 등의 식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제보된다.
프로게이머의 연봉은 1군 주전의 경우 평균 1000~2000만으로 알려져 있다. 개개인의 연봉은 기밀사항이다. 2군을 포함한 최저 임금은 연봉 500만(월 30~40만 선)이다. 그러나 대기업팀(SKT·KT·CJ 등)을 제외하면 2군 연습생의 임금 자체가 없다.
프로게임단은 출퇴근 없이 365일 24시간 합숙을 기본으로 한다. 게임단 숙소 내 경쟁은 매우 치열하며 이들은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코치들의 감시 속에서 하루 12~16시간 게임연습을 한다. 2군 이하는 밥-청소빨래-게임-밥-청소빨래-게임-잠의 패턴으로 생활은 없다.
프로게이머는 초등학생들의 선망직업 1위를 차지하는 등 청소년에게 인지도가 높고 타 스포츠에 비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이 매우 좋아 커리지매치 연평균 응시자 누적수가 5000[참가비는 만원]에 달한다. 2010년 현재 등록된 선수는 「프로 284명 + 준프로 131명= 415명」으로 프로가 되겠다는 잠재적 동기를 가진 인적 인프라의 크기는 이의 10배를 넘길 것이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나이의 소년들이 종종 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현존 프로게이머 평균 만 20.5세_이중 1/3이 미성년자]가 되며 이중에서 성공해 TV에 나와 경기할 수 있는 특별한 선수들(팬들은 그들을 ‘듣보’라고 부른다)은 5년의 선수수명이 끝난 후 소리소문 없이 은퇴[연평균 43.5명]한다.
맹렬한 연습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 허리-목 디스크를 훈장으로 단 20대 초중반의 은퇴자들은 공교육을 마치지 못했고 다른 기술도 없다. 일반 스포츠처럼 체육교사가 되거나 도장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조폭도 못된다. 몇몇은 승부의 감을 쫓아 도박으로 빠진다. 그 얼마 뒤 다른 사회생활을 찾도록 떠밀린 은퇴자 앞에 입영통지서가 날라든다.
청소년-청년기의 수백수천 인적 자원을 끊임없이 투입시켜 조그만 방안에 가두고 거르고 걸러 짜내고 짜낸 후 수명을 다하거나 자포자기하면 교체-순환시켜 단체전을 돌리는 이런 공장 구조를 일명 닭장 시스템이라 부른다.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송병구 같은 최상위 몇을 빼면 이 바닥에서 선수로 산다는 것은 희생한 대가에 맞는 수익을 얻는 공정한 경쟁노동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2009년 이제동 FA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정상권 선수들도 자유계약선수를 선택하면 어느 팀도 받아주지 않아 한 순간에 은퇴[08년 3월 부터 협회는 팀소속이 아니면 프로게이머 자격을 박탈함] 위기에 내몰리고 법적대리인 선임이 금지되며 계약내용 기밀유지협약이 걸려 있는 고용 계약을 맺는다.
개인 스포츠를 한국형 엘리트단체스포츠로 변형시킨 e스포츠는 최하부에선 클랜숙소 관리자에서 시작해 방송사와 e스포츠 언론을 거쳐 최상위에선 협회 임원까지 수많은 어른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10~20대의 피땀을 쥐어짠 생산성(세계 정상의 게임퍼포먼스를 통한 관중동원력)을 팬들에게 중개하는 브로커로서 밥벌이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어린 프로게이머 하나도 그 어느 어른 한분도 닭장에 대해서, 닭장 이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팬들도 듣지 못했다.
게임을 통해 연예인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쫒아 인생을 지불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 명확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쇼비지니스 무대에 올라가 최저의 임금을 받으며 짤막한 청춘을 바치고 조촐한 은퇴식 하나 없이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짐을 감내한다.
이것이 e스포츠를 지탱하는 열정이다.
어느새 우리의 취미는 사육된 열정이 죽기 직전 내지르는 긴장된 단말마를 즐기는 일이 되었다.
바꾸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12년 전 한국에서 IMF라는 위기와 IT산업 투자라는 기회의 쌍곡선을 타고 심어져 열정이란 양분을 빨고 자란 e스포츠의 주권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 내리 깔아본 팬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상대의 뒤통수를 더 잘 치기 위한 잘 짜인 선전선동물이 쏟아질 올 한해 2010년이 이판에서 처음으로 구조 그 자체가 바뀔 기회라고 한다면, 협회(KeSPA)든 블리자드든 선수에게 공정한 거래를 제안하는 쪽에게 힘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어떤 협상계약 조건보다도 우선, 젊고 순수하고 무지한 소년-청년들의 열정을 올바르게 기르겠다고, 브로커의 밥그릇을 위한 책임지지 못할 덩치를 키우지 않겠다고, 쉽게 쓰고 쉽게 버리지 않겠다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겠다고,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1차 생산하는 주체와 직접 이익을 나누는 수익구조를 개발하겠다고, 스포츠 선수로서 존중하겠다고 확고하게 약속하도록 요구하고 또 약속하는 쪽에게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사실은 이것이, 어른들이 당신들보다 어린 자들 앞에서 “네가 좋아서 하는 거니 감내하라”는 무책임한 열정의 요구 뒤로 숨는 이바닥에서, 열정을 최종 소비하는 팬들이 맡을 고귀한 의무가 아닐까? 우리에게 있어 처음이며 또 어쩌면 마지막이 될 기회가 아닐까?
※본문의 수치는 프로게이머의 꽃인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 및 12팀 프로리그 체제가 완성 된 07년 이후의 데이터에 근거한다.
※자료는 제보를 바탕으로 했으며 구체적 수치는 KeSPA(http://www.e-sports.or.kr/)의 기록을 통계처리해 참고했다. 도움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스포츠 칼럼/스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