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는 고대 중국의 유교사상가 공자의 일대기를 다룬 자전 영화를 제작할 전망이다. 또한, 주윤발이 주연을 맡는다. 버라이어티지에 따르면 '옹정제'와 '한무제'를 감독한 후메이 감독이 연출할 예정인 이번 영화는 28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여한다. 중국공산당 60주년과 공자탄생 25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다고 한다."
중영전쟁(1차 1841~42, 2차 1856~60) 패배로 도래한 근대 이후의 중국대륙과 ‘공자님’의 지난한 썸씽을 기억할 때 위 기사는, "한나라당이 창당 15주년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가예산으로 민족 지도자이자 항일 독립투사인 김일성 장군 일대기를 찍는다"는 말처럼 위화감이 느껴질 일이다.
마지막 농민황제 모택동의 공산당이 일제에 이어 중화민국을 쫓아내고 대륙을 제패(1949)한 후엔, 모택동의 취향에 있어서든 맑시즘-공산주의에 있어서든 아니면 문화대혁명기(1966~76)에 있어서든 중화 전통문명을 상징하는 공학(孔學)은 반동의 기표로서 공공의 적이었다.
모택동은 말했다 - “공자는 노예주귀족을 대표한다.” “공자는 그저 말만 했다.” “우리는 공정하게 말해야 한다. 진시황은 공자보다 훨씬 위대하다.”
국민작가로 받들여진 루쉰은 전통 중화사상은 일단 비난하는 성향 답게 유학(儒學)을 사람 잡아먹는 식인귀로 매도했었고 홍위병은 공자 가문의 집과 무덤과 사당과 유품을 파괴했다.
청말의 ‘타도공가점(공가네 상점을 타도하자)’ 같은 구호는 근대화에 대한 열망으로 읽을 수 있지만 문화대혁명은 모택동 개인의 권력욕 또는 핏덩어리들의 반지성적 광기 외엔 설명할 말이 없는 실수였다. 당시 파괴된 중화 문물과 고문·모욕끝에 살해당하거나 자살한 지식인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고발해야하는 정치적 혼란상은, 인민을 수천 년에 걸친 문화유산과 단절시켜 버렸다. 심지어 바둑이나 권법 같은 심신의 기예마저도 봉건적 미신으로 탄압받았다.
그 혁명의 결과가 20세기 이후 교류가 시작된 이래 남한인들이 종종 혐오감을 드러내는, 천박하고 더러운 짱개로의 지난한 후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건 서방과 세계의 화교들, 홍콩인, 대만인, 중국계 싱가포르인이었다. 20세기가 받아들인 차이나드림은 대륙이 아니라 주로 차이나타운과 홍콩영화에서 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방 화교들이 대륙중국인을 깔보는 마음엔 경제적 우월감이 아닌 전통과 문화가 결핍되어버린 중국 대륙인을 연민하며 애증하는 복잡한 감정이 깔려 있었다.
개혁개방(1978-1992-) 후 정체성이 모호해졌던 집권층인 공산당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문화사업인 영화를 매개로 세계적 인지도가 있는 주윤발을 캐스팅해 새삼스레 공자의 삶과 사상을 국가수립 기념 주년에 맞춰 조명하는 의도를 가정해 보는데 특별한 한문고전 소양이 필요하진 않아 보인다.
1. 아시아 국가들이 20세기에 고도성장을 이뤘을 때, 서방은 이를 유교-자본주의의 틀로 이해했고 실제로 유교는 자본주의를 문화적으로 보완해주는 측면이 있다. 현대 중국은 실경제에선 이미 자본주의로 넘어간 상태다. 그 전례를 확실하게 따라가겠다는 표현이다.
재밌게도 개혁개방 이후 중국 내에서 공자에 대한 호감도는 올라가고 있었다.
2. 비록 경제적/군사적으로 강국에 올라섰으나 대국 노릇을 하려면 문화수준과 함께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 법이다. 세계를 향해선 고대문명 중 가장 현대적인 인문세계를 설계한 공자의 역정을 통해 뼈대 있는 문명발원지임을 내세우고, 동아시아 이웃들에 대해선 유교문명권의 종주국임을 분명히 하고, 내부적으론 유명무실해져 가는 맑시즘을 대신해 56개 다민족국가를 묶을 구심점을 세우려는 시도다.
관학으로서의 유학은 한고조 유방 이후로 중원 통일제국과 사해의 오랑캐를 다스리는 지배 이데올로기였고, 죽은 공자는 한고조 이후 역대 황제들이 지배권을 정당화 할 필요가 있을 때 봉록과 작위를 점차 높여 준 인물이다. 2002년 부터 시작된 공자 위상 재확립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2200살짜리 문화제국주의의 부활 쯤 되겠다.
3. '맑시즘으로 대표되었던 서구 학문의 주도를 끝내고 중국의 학문을 중심으로 만들겠다.' 문화혁명기에 박해받고도 꾸역꾸역 살아남은 지식인들이 고전 인문-사회학에 가지는 자부심과 학문 수준은 대단하다. 정부는 모택동 사후 꾸준히 문명 복원을 시도해 왔고 이는 공자로 상징되는 인문-사회학뿐만이 아닌 동아시아적 아이디어 전반(ex-한의학)에 대한 국가차원의 투자로 나타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중국은 공자를 가지고 뭘 해보고 싶은 게다.
제국몰락-군벌난립-국공내전·항일전쟁을 거친 19~20세기 중국이 맑시즘을 받아들인 상황은 한제국 몰락 후 도래한 오호십육국 시대에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며 몰고 온 충격과 닮은 구석이 있다. 그 이후의 신유학을 통한 극복과정과도 닮았다. 중화의 정체성이 시작되는 뿌리로 되돌아가 외부문명의 충격이 준 자극을 흡수해 회춘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맑시즘과 유학이 굳이 묶일 수 있는 코드가 있다면, 위민(爲民)주의다. 아직은 그 융합이 어떤 형식일지 알 수 없지만 순자학파의 유학이 새 술을 담는 새 부대가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한국에선 유학이라고 하면 조선 성리학만 떠올리겠지만 사상의 역사에서 유학의 계보는 넓고 다양한 것이다.
동북공정스러운 공자님 사업이 드러내는 ‘짱개사상 리턴즈’는 좀 노골적이지만 그럴법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가 존경받는 어르신 끼고 동네 따거 노릇을 하려 수작을 거는 이 때에(강한 자의 아름다운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리는 법이다) 그럼 조선 꼬꼬마들은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평범한 논의조차 본 기억이 가물타.
한편에서 복잡한 예식을 다 지키는 유교 근본주의 전통이 남아있고 한편에서 공자가 인육을 즐겨먹었다는 개소리가 떠돌고 대학생에게 논어에 대해 물어서 공자가 썼다고 답하면 양반인데 환빠들은 공자는 동이족이라며 열폭하는 이 나라에선 무엇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서구 인문-사회학은 한시가 급한듯이 수입되고 또 현실적인 요긴함이 있을 거라 기대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이웃인 중국의 사고에 대해선 무심한 한국이 동양학을 소비하는 지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한가지 굿뉴스라면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박 칠 경우 우리는 형평성을 위해 예수와 부처에 이어 공자 탄신일에도 놀러갈 거라는 점일까.
영화는 2010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