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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칼럼/스타1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 폭군의 기지(機知)

4일 펼쳐진 바투 스타리그 결승의 포인트는 [1]신병기인 메카오닉(메카닉+바이오닉, 가칭) 빌드에 대한 이제동의 대처와 [2]불리한 맵 순서의 극복을 위한 정명훈의 다전제 판짜기였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선 TvsZ 기본 운영능력에서 앞서 있고 맵도 웃어주는 이제동의 완승이 예상되었지만, 실제 경기에선 외려 정명훈이 2선승을 따내며 이제동을 코너로 몰아붙였습니다. 스피디한 작전 수행력이 발군인 정명훈 그리고 Sk Terran 1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임요환/최연성의 참모전 역량을 과소평가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동은 박성균·신상문·신희승·진영수 등의 명성있는 테란들과도 팀을 넘어 연습을 하였지만, 정명훈은 보통 약세로 평가받는 팀 내의 저그들과 연습을 했습니다.

보안유지의 의미도 있겠지만 꽉 짜인 빌드 전략을 준비한 뒤에 치밀한 작전 전개로 승부를 보겠단 마인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과거 SK텔레콤은 팀 내 연습을 선호하는 전통이 있었고 심지어 최연성은 전성기에 아마추어와 결승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심리전을 통해 이기는 패턴을 밀어붙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의 연장선상입니다.

◈메카오닉 빌드= (원팩토리-벌쳐-더블커맨드를 바탕으로(입구 심시티가 좋은 맵에선 바로 배럭->커맨드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스타포트&아머리까지의 테크를 한번에 쭉 올린 뒤 배럭을 늘려, 자원+테크의 힘으로 저그 체제에 역대응을 해나가 맞춰 잡는 빌드입니다.

벌처와 마인을 통해 초반 주도권을 잡기 용이하며, 레이스 1기가 지속적인 정찰을 제공할 수 있고, 발키리+터렛을 적극 활용해 골칫거리인 빠른 뮤탈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를 할 수 있는데다, 레어단계 저그에게 히드라+럴커를 강제시켜 투팩 탱크+바이오닉으로 체제 우위를 점하는 진행이 가능하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1세트,  정명훈 [T]3시 vs 이제동 [Z]11시 in 메두사

-최연성이 고안한 메카오닉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첫판입니다. 메두사는 BBS 등등의 초반 저격용 빌드를 테란에게서 제한시키는 맵입니다. 또 원배럭 더블커맨드 후의 정석 바이오닉 진행이 어려우며 메카닉이 좋지만 메카닉이 너무 노출된 맵이기도 합니다.

이제동은 보통 애매모호하면 강한 압박을 통해 상황을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1세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T1류 메카오닉을 실전에서 상대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2해처리 테크에서 벌쳐 1기를 무시하며 히드라로 밀어붙였으나 다수 SCV와 탱크 1기의 수비 끝에 막혔고 정명훈이 레이스 1기로 가난한 저그의 상황을 확인하며 뮤탈을 발키리+터렛으로 무난하게 막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난입한 뮤탈의 퇴로를 발키리로 급습해 몰살시키는 치밀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후의 진행은 단순 명확합니다. 2팩토리-5배럭으로 늘려 럴커로 시간끄는 저그를 가볍게 밀어내 센터를 장악합니다. 2시의 저그 멀티를 말리고 중립건물을 깨 방어루트를 확산시킨 다음 가난하게 하이브간 저그를 상대로 3팩토리의 힘으로 시즈탱크+마인/속업 벌쳐로 센터 대치전선을 형성하며 말려 죽입니다.

정명훈의 섬세한 심시티와 정교한 컨트롤을 보면 1경기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세트,  정명훈 [T]11시 vs 이제동 [Z]7시 in 왕의 귀환

-2세트에선 이제동이 초반 승부를 볼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 맵만 테란에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번은 빌드 싸움에서 겁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9_스포닝풀을 선택했고 오버로드 정찰 방향이 적확했고 드론마저 전진 8_배럭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동의 낙승이 예상되었습니다만, 정명훈은 저그 앞마당 상태를 정찰용 SCV 3기 중 하나로 확인하자마자 그냥 자연스레 배럭은 마린 3기를 생산하고 바로 저그 진영으로 날리고 3마린과 2scv를 본진으로 후퇴시킨 후 깔끔한 컨트롤로 저글링 6기 중 5기를 입구에서 몰살 시킵니다.

뒤늦게 드론을 뽑으며 상황을 타개하려한 이제동이었지만 중요한 첫 오버로드는 정찰 scv를 후속 저글링이 쫓는 사이에 마린 3기의 추적 끝에 잡혔고 배럭으로 앞마당을 보고 scv를 돌리며 본진을 보는 정명훈이 정찰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상태였습니다.

공중 배럭을 히드라가 치는 사이에 투팩토리의 속업 4벌쳐가 난입해 테러가 시작됩니다. 소수 벌쳐 게릴라엔 어떤 종족을 상대로든 일가견이 있는 정명훈이라서 한번 틈이 보이자 틈을 벌리며 끊임없이 휘둘렸고 마인업 후 앞마당을 먹은 뒤 3팩+엔지니어링 베이를 건설하며 역뮤탈에 대비한 뒤에 탱크와 골리앗을 조합해 남하함으로써 가볍게 경기를 끝내게 됩니다.


왕의귀환에서 정명훈이 시전한 살짝 전진된 8_배럭은 저그가 12_앞마당해처리로 자원를 취할 경우 벙커링으로 끝내고 9_스포닝풀로 기습할 경우엔 방어를 우선하도록 구상되었습니다. 잘 짜인 테란 빌드 포석의 무서움이 이렇습니다.

정명훈의 빌드의 목적 이해도에서 나오는 스피디한 작전 전개능력이 돋보입니다.

○역대 결승에서 저그가 0:2로 뒤진 상황에서 테란을 상대로 역전 우승한 경기는 [김준영vs변형태] 뿐입니다. 그 외엔 대부분 일방적인 3:0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제동 역시 무난하게 패배하리라 예상되었고 그럴 만한 근거도 있었습니다.





3세트,  정명훈 [T]11시 vs 이제동 [Z]7시 in 신추풍령

-1세트나 2세트 중 어느 한쪽이라도 이제동이 이겼다면 이제동의 낙승을 예상할 수 있었던 맵입니다. 드론으로 가스러쉬를 한 다음에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정석 원배럭 더블 바이오닉 운영을 강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4세트는 달의눈물입니다. 기세와 기량과 맵 순서란 삼면을 고려해 볼 때 신추풍령은 정명훈에게 까다로울 수 있는 맵 이었습니다.

반면, 정명훈은 1,2세트를 모두 따냈기에 필살기를 질러 손쉬운 승리를 노릴 수도 있습니다. 이제동은 초반에 수세적인 진행을 할 확률이 높고 수세적인 초반을 지나 2인용 신추풍령에서 선택 가능한 카드는 빠른 뮤탈(이어진 3가스 뮤탈) 등등의 올인류 입니다. 정명훈은 '올인만 막으면 이긴다.'라는 마인드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정명훈의 계산은 깨집니다.

이제동이 투해처리 레어를 간 뒤 느즈막히 방어용으로 생산한 히드라 5기를 섞어 뮤탈과 함께 진격해 앞마당을 들어올렸기 때문입니다. 정명훈은 2인용 맵인 신추풍령에서 지구전으로 풀기에 좋은 [원팩 더블 후 투팩&아머리 후 엔지니어] 메카닉 진행을 택했는데, 보통 이 경우엔 벌쳐가 마인을 깔며 히드라의 움직임을 억제합니다.

그러나 정명훈은 3가스 뮤탈 올인을 확신하며 첫 벌쳐는 저그 앞마당을 살짝 견제한 뒤 5시 확장 체크에 주력했고 후속 벌쳐는 오버로드와 함께 남측 제1언덕에 올라온 히드라들에 쫓겨 돌아가 수리할 뿐이었고 본진-앞마당은 탱크를 배제한 채 사업 골리앗+터렛 라인을 구축한 상태였습니다.

마인 징검다리가 형성되었다면 노업 히드라가 폭사해 경기를 쉽게 내주게 될 가능성이 큼에도 이제동은 냉정하게 그 경우를 배제하고(투해처리 레어 완성 후 히드라덴이 완성 되는 걸 다 들킨 상황에서 히드라 중심으로 운영하진 않을 거란 판단으로 했을 정명훈의 마인업 배제를 저글링 2기 정찰로 확신해 역이용한 듯싶습니다) 정명훈의 계산을 벗어났습니다. 이 장면에서 보여진 폭군의 침착한 기지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 이 날의 결승 행방을 바꾼 포인트였습니다.

4세트, 정명훈 [T]9시 vs 이제동 [Z]6시 in 달의눈물

-4경기부터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달의눈물은 테란의 앞마당 확장이 어렵고 2해처리에서 다양한 공격패턴을 가진 저그가 scv 정찰을 차단하며 테란에게 도박을 강요할 수 있는 맵입니다. 3경기에서 이어진 기세에 맵의 이점이 더해지며 다전제의 흐름은 빠르게 이제동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정명훈은 묘수를 통해 난관을 극복할 생각으로 본진 입구를 막고 10_배럭 10_가스 뒤 센터 구석에 가난하지만 빠른 몰래 13_팩토리를 건설합니다. 최대한 당겨진 원벌쳐의 예상외 난입 타이밍으로 저그를 테러한 뒤 이어진 투스타포트 레이스로 회복불가로 밀어넣는 콤보 전략을 시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면 경험이 풍부한 이제동은 빠른 드론 정찰로 상대 본진을 발견했고 방향을 튼 오버로드가 건설중인 팩토리를 발견하며 꼬이기 시작합니다. 빌드의 핵이 원벌쳐 기습에 있던 만큼, 이후 보여진 현란한 벌쳐-레이스 '쇼'나 기발한 기생 팩토리 '연출' 에도 불구하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패배는 분명했습니다. 이제동의 동시난전시 멀티테스킹이 출중한데다 정명훈은 다수 뮤탈에 대한 방어로 터렛을 과도하게 늘리니 배럭을 늘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앞마당도 하지 못해 오버로드만 속업되면 경기가 끝날 상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명훈은 빠르고 현란한 진행을 보여줬지만, 빌드의 목적 자체가 어긋난 뒤에도 쌍방의 운영 박자를 무시하고 억지 강행을 했을 뿐입니다. 복잡하지만 결국 정해진 레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달리는 철마 같다고 할까요. 이런 모습은 5세트에서도 반복됩니다.

5세트,  정명훈 [T]3시 vs 이제동 [Z]11시 in 메두사

-결승 5전제 5세트에선 대개 서로 무난한 초반 진행을 하기 마련입니다. 5세트까지 가면 메두사는 테란의 카드가 제한되고 메두사 메카오닉 자체에 대해 충분히 적응되었을 시점이라 이제동에게 객관적인 점수가 높습니다. 3,4세트를 연속으로 따낸 기세까지 생각하면 사실 정명훈의 승산은 낮은 편이었지만 정명훈은 주늑들지 않고 나름의 준비를 보여줍니다.


이제동은 12_앞마당해처리 후 투해처리 레어, 정명훈은 1세트와 마찬가지로 메카오닉 빌드를 씁니다.

그러나 완벽히 똑같은 진행은 아니었고 약간 틀어서 레이스를 생략하고 속업벌쳐 드랍을 계획합니다. 메카오닉의 모체가 원팩 후 원스타/더블커맨드 빌드 그러니까 '발리앗'에 있던 만큼 3해처리 혹은 드론 생산을 탐하는 저그를 상대론 테크로 인해 공격에 대한 이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동은 2기의 저글링을 찍은 뒤엔 계속 드론을 찍었고 히드라덴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scv로 확인한 정명훈에겐 승부를 볼 기회로 여겨졌음이 분명하고 꼬는 패턴을 5세트까지 갈 경우를 고려해 미리 짜왔음도 분명합니다.


일꾼 공방부터 둘 다 날이 바짝 선 소수 컨트롤을 보여주는 가운데, 팽팽했던 승부의 추는 정명훈의 벌쳐가 11시 중립건물을 미네랄 비비기를 통해 타고 올라간 후 이제동의 유일한 병력인 2저글링+1드론에 감싸 터진 순간 기울기 시작합니다. 오버로드 시야에 벌처 1기 scv 1기가 스친 순간에 칼타이밍으로 긴 우회를 통해 선방한 건 1류 저그다웠습니다.


scv로 센터 저글링을 낚으며 들어간 속업벌쳐 3기 드랍은, 중립건물 난입 실패로 저그의 타이밍이 방해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늦은 게 됩니다. 이때 딱 튀어나온 뮤탈에게 드론 사냥에 열성인 벌쳐가 빠르게 잡히면서 경기는 확 기울어집니다. 본진에서 터렛+발키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동이 타이밍을 뺏긴 상황이 아니기에 정명훈은 드랍 후 드론 사냥이 아니라 벌쳐를 나눠 시간을 끄는데 집중했어야 합니다. 또한, 뮤탈에 본진이 유린당하고 앞마당 입구가 저글링에 타격받을 때 정명훈은 컨트롤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객관적 열세 상황에서 주관적 노력의 가능성마저 포기합니다. 첫 발키리의 공중곡예에서 터렛이 스커지를 점사 했다면 기회가 왔을지도 모릅니다.





◎◎빌드의 목적을 향한 복잡한 작전 전개 내에선 테란 중 누구보다 날카롭고 빠르고 냉정하지만, 빌드의 목적 그 자체가 어긋날 시엔 목적을 바꿔 타개하는 역량이 떨어지고 명확한 전략적 열세 모드에선 집중력이 잘 감소하기에 정명훈이 2연속 준우승에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4·5세트 였습니다.

이제동은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기지로써 스스로 구원한 만큼 어떤 칭찬을 받아도 모자릅니다. 메카오닉은 강력했고 정명훈의 다전제 판짜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제동의 마인드 컨트롤은 정명훈의 예상 범위를 넘었습니다.

폭군(暴君)은 급박한 자기성질을 못 이기는 게 흠이라는데, 저그들의 난폭한 군주인 이제동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