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링크의 글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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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은영전 비평 : 양 웬리와 탈정치성 -한윤형-
http://yhhan.tistory.com/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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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근대 정치를 엮어 보는 건 묘한 일이겠지만 은영전에서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 양 웬리의 정치적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노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양 웬리의 군사철학은 손자병법의 철학을 그대로 배껴다 쓰는데 손자는 전쟁터의 노자임. 중국역사덕후인 다나카 요시키가 양이란 캐릭터에 부여하려 했던 일관성을 읽을 수 있는 부분)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근대로부터 시공간을 한참 벗어난 우주세기에서 근대적 정치 문제가 등장하는 SF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로 유명한데 실은 동아시아의 삼국연의류 땅따먹기 역사소설에 근대정치를 끼얹은 무국적적 패러디에 훨씬 가깝습니다.
애초에 삼국연의류 소설에서 노자 패러디 같은 캐릭터로 민주정치를 논하려 했으니 근대정치학관 영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점에서 우리들이 종종 그랬었던 것처럼 서구에서 수입된 근대정치 및 민주주의를 은영전을 통해 이해하려는 태도는 좀 무리수입니다만 소설 그 자체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동아시안들이 서구정치사상을 자기화 없이 딱 그대로 이식 받을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기도 합니다.
사회철학서로 보는 <<노자>>의 키워드를 몇 개 추출하자면 이렇습니다. 정복전쟁에 대한 냉소, 권력에 대한 회의(와 충고), 생명의 보존, 그리고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거부.
춘추전국 이후 필요에 의해 천차만별로 다양한 해석이 가해졌지만 역사적 <<노자>>는 늙은이의 노래고 오랜 난세를 거친 뒤 나온 회의적이고 노회한 사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로서의 노자는 주나라 역사서를 관리하는 도서관장이고 노자학파인 도가는 사관이 민간에 내려와 발전했다는 설이 있는데 양은 원래 역사학도를 지망했지요?
<<노자>>는 ‘감히 무엇을 하려는 용기’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고 ‘감히 무엇을 하지 않으려는 용기’로 장구(長久)하길 권하는 책이기도 한데, 양 역시 연금을 받으며 가늘고 길게 살 그 날을 기다립니다.
또, 허름한 갈포로 옥을 감싸듯이 허술한 외면과 깊이있는 내면이 접착된 질박한 캐릭터는 <<노자>>가 기리는 인물상이기도 합니다. 是以聖人被褐而懷玉
제국(전제국가)에 대한 저항감 역시 노자식 방임주의 이상의 맥을 찾긴 어렵고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 역시 노자식 자유주의를 근대에서 투영가능하게 하는 틀 이상으로 보는 정치적 깊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서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정치활동엔 심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나에게 있어 정치권력이란 하수처리장과 같다. 삶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진 않다.”
무엇보다도 노바타 양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태도는 무엇을 억지로 이루거나 하고자 하는 것-인위(人爲-)에 대한 거부입니다. 이는 인간이 강한 신념을 갖는 것에 대한 혐오로 나타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은 양 나름의 목적과 신념이 있고 그것을 무엇을 억지로 하려들지 않으면서 잘 이뤄냅니다. 노자가 그럴 수 있다 주장하듯이.
-보너스
본격 은영전 비평 : 양 웬리와 탈정치성 중에서
http://yhhan.tistory.com/1238
<그런 이가 신념에 대해 혐오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양 웬리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의 능력치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나, 남들이 듣고 배울만한 진술은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군사적인 것 일체를 혐오하던 양 웬리는 부하를 구타하는 지휘관을 보면 가차없이 군복을 벗겨 버리는데, 그런 행동은 그런 지휘관 없이도 양 웬리가 훨씬 잘 싸운다는 전제 하에서 정당한 것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몽고메리 장군은 부하를 구타한 패튼 장군을 옹호했더랬다. 목표수행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무심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그들보다 더 잘 이기고 나름의 목표수행을 위해 진력하는 양 웬리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능력치는 모방할 수 없고 그 무심하고 시크함만을 모방할 수 있는 거다. 그 무심한 자세가 그 특유의 정치혐오의식과 결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
=> 무위이무불위(無爲以無不爲) '하지 않음으로서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한윤형님은 소설 속의 양이 목표에 안간힘을 쓰지 않음에도 목표를 탁월하게 성취하는 것을 그의 능력치가 현실의 사람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소설 속의 '먼치킨' 양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노자류 '무위의 공능'으로서 능력치의 양적 차이가 아닌 스타일의 질적 차이입니다.
이점은, 정부 체제가 아니고 집단 내 권력의 문제긴 합니다만 양 함대(그리고 양의 세력)에서 양이 어떤 정치적 행위도 하지 않고 방임함에도 삐딱하고 개성 강한 함대원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어 나름의 질서를 갖고 양의 지시를 따르(거나 거스르)며 알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양은 상명하복식의 권위적 리더쉽도 그렇다고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는 민주적 리더쉽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은 독재자가 될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정치가가 될 인물도 아닙니다. 그는 노자적인 캐릭터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저 시크하게 굴어봤자 쿨게이가 될 뿐으로 무위의 공능을 부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