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상에서 있었던 양의학vs한의학vs민간의학 논쟁 참여나 관찰을 통해 얻은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일반인이 일반인의 시각으로 정리한 글이다.
*양의학은 서구의학이자 현대의학을 말한다.
*한의학은 중국의학이 한반도에서 토착화 한 것을 말한다.
*민간(대체)의학은 다양한 민간요법에 더해 제도권에 포섭되지 않은 한의학을 말한다.
1)민간의학 중 집단세력으로까지 발전한 건 침술과 구(뜸)술이다. 침과 뜸은 모두 황제내경에서 비롯된 경락을 배경이론으로 쓰니 형제간이고, 경락이론과 침뜸은 제도권 한의학 역시 중요하게 받아들였으니, 침사와 구사와 한의사는 모두 중국의학이란 한 뿌리에서 나왔다.
대표적인 인물론 구당 김남수씨(94)가 있는데, 이 사람은 침·뜸을 둘 다 한다. 화상침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인에겐 뜸을 주력으로 민다. 09년에 한의사협회가 침사 자격만 있고 뜸뜰 자격은 없다고 소송을 걸어 패소해 의료행위가 금지된 후 미국병원에 실험하러 갔다. 침과 뜸을 놓는 원리는 같지만 한국에선 1973년 의료유사업자령 폐지 이후 침사든 구사든 자격을 딸 수 없다. 침사 자격은 일제강점기에 딴 걸 한국정부에 인정받은 것이다. 덧붙여, 대한제국-일제강점기에 한의사는 제도권에 포섭되지 못해서 의사가 아니었다.
김남수씨의 뜸사랑은 좌파적인 행보를 보이는데 뜸을 대체의학으로 교육해서 국민자가의료 생활화를 주장하고 또 무료봉사에 열성이다. 그러나 김남수씨와 뜸사랑 역시 과거엔 침구사 자격을 제도권에 편입시키고 합법화하려는 게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협과의 싸움이 과열되면서 대체의학화 및 봉사로 방향을 선회했을 수 있다.
2) 세 세력은 모두 대립하고 있으며 감정적이고 야비한 언사는 물론 행동도 심심찮게 나온다. 셋은 각자 대의명분(a.k.a 국민건강)을 걸고 있음에도 속내엔 집단이기주의와 더잘먹고사니즘의 문제가 걸려있다. 국민의 한 사람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여담이지만 의료 보험 민영화가 강행되면 난 김남수식 민간-대체의학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사람인데 치료는 해야지 않겠나.
참고로 양의학은 한의학을 돌팔이사기꾼이라 하고 한의학은 민간의학을 돌팔이사기꾼이라 한다. 양의학은 문제가 생기면 한의학을 탓하고 한의학은 문제가 생기면 민간의학을 탓하고 민간의학은 이들을 돈독 올랐다고 불신한다. 감명깊다.
4)한의학과 민간의학 간의 정치-이권-제도 문제를 제하고 보면 ‘의술’에 있어선 결국 양의학vs한의학의 문제다.
한국에서 양의학은 확실히 메인스트림이다. 항생제를 자주쓰고 면역계엔 무력한 문제 정도는 있지만 양의학의 혜택 안에서 기초적인 보건 위협이 크게 줄고 외과 수술이란 백마술이 등장했단 사실엔 변함이 없다.
5)‘양의사란 족속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참 싸가지 없더라’라는 평판이 있음에도 내가 이들을 신뢰하는 건 어떤 의학·의술이라도 공개되며 공개된 의술을 걸러내는 엄밀한 룰이 양의사들에겐 보편화 되었기 때문이다. 양의학이 서구 철학과 현대 과학의 토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점도 강점이다. 이 말은 양의학의 어떤 하찮은 의료라도 방대하고 탄탄한 이론적 깊이에 줄을 대고 있다는걸 뜻한다. 다시 돌려 말하자면 그들은 상식 중의 상식에 근거한 치료를 한다. 이 점에서 양의학은 마땅히 현대의학이라고 불러야 한다.
6)양의술에서 ‘효과/부작용’의 증거중심의학 검증레벨을 보라.
■Level 1 - 무작위 임상 연구(randomized clinical trial, 실험군과 대조군을 무작위로 나눈 뒤 두 군을 비교하는 연구)
또는 여러 임상 연구를 메타분석한 연구가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경우
■Level 2 - 무작위 임상 연구이나 치료 효과의 의미가 적은 경우
■Level 3 - 전향적이고 통제된 코호트 연구이나 무작위 선정이 안된 경우
(일반적인 환자군을 죽 지켜보면서 얻은 연구라고 생각하면 될듯합니다.)
■Level 4 - 후향적(연구를 시작한 시점에서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연구)이고
무작위가 안된 코호트 연구나 환자군-대조군 연구(위험 인자 등을 파악하기 위해 환자군과 대조군을 비교하는 연구)
■Level 5 - case series(비슷한 치료와 효과를 보인 환자들을 보고하는 연구)
■Level 6 - 동물 또는 기계적 모델 연구
■Level 7 - 다른 목적의 연구에서 추정된 결과나 이론적 분석
■Level 8 - 이성적인 추측(상식 수준) 또는 증거중심의학 이전에 일반적으로 시행되던 치료들
[level 1이 물리학이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 현재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며, Level 8이 가장 낮은 수준의 증거다. 이토록 까다로운 건 유기적인 인체가 대상이라 필연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거니와 인체가 대상이라 효과 이상으로 부작용과 그에 따른 법/사회/경제적 타격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
7)양방과 한방의 골이 깊은데 내과의사 한정호씨가 온/오프에서 안티-한방무당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양의사다. 한정호씨는 한의학을 까기 위해 수단으로 끌어다 쓰는 동양철학과 동양사에 대해 무지하지만, 부정확한 말을 자르고 이어붙여 일반인에게 거리낌없이 선전한다. 그렇다면, 그 목적일 한의학에 대해선 얼마나 공정함을 지켜줄까? 웹에서 관찰 가능한 양의에게서 겸손을 느끼긴 어렵다.
8)많은 사람이 간과하지만 동방(한중일)의학의 무시무시한 점은, 일관된 프레임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과 그 결과물 기록이 단일한 문자체계인 한자 안에서 이 천년 넘게 쌓였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죽은 인간 해부엔 큰 관심이 없었다.) 현시대에선 전쟁이라도 터지지 않는 한 산 인간 가지고 무식하게 실험해대기 힘들다. 덕분에 효과중심의학으로 치자면 엄청난 경험 폭을 보유하고 있다. 현장 의료에서 종종 한의학이 한방씩 터뜨리는 게 그래서다. 문제는 검증의 깊이다. 한의학에선 8레벨만 충족해도 기탄없이 쓰인다. 양의학에서 의심 없이 쓰려면 1레벨까지 통과해야 한다.
한의사 입장에선 수 천년에 걸친 임상근거가 있고 양의사 입장에선 검증도 제대로 안 한 치료술을 (결국은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위급) 환자에게 지르고 보는 게 된다. 이런 입장 차가 있다.
9)나는 한국 한의학계가 돌이킬 허물이 있다면, 한의사가 뛰어나거나 새로운 치료는 '비방'이라 하여 자신만 알거나 체인 같은 이해관계자 끼리 공유하고 세상엔 감추는 풍조를 용인했던 일이라 본다. 과학 이전에 업계가 학적으로 철저하지 못했단 관점이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면 비판적 검증을 위한 토론의 기초정보가 건전해지고 통계를 내기 위한 데이터가 더 탄탄했으리라 생각한다.
10)한의학이 높은 수준의 검증을 못 한 외부 원인으론 인프라와 자본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한의학과 달리 양의학엔 각종 병증과 실험 기구가 모인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들이 배경에 있고 엄연히 말하자면 현대의학으로서 이용가능 한 인프라는 세계적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보자면 양의학의 뿌리가 되는 철학과 한의학의 뿌리가 되는 철학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의학은 개별 환자특성에 따라 진단과 처방을 세분(같은 증상이지만 처방이 다른 경우도 있다)하는걸 중시하는데 현대의학에선 이를 선택편견의 오류라고 한다. 검증과정과 통계수집에서 충돌이 일 수밖에 없다.
11)그래서 일부? 한의학 관련자들은 동양철리에 바탕해 쌓아온 한의학 이론은 껍데기며 중요하지 않다고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요컨대, 경험적으로 모인 처방전만이 중요하지 이론은 포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정립을 도외시한다면 한의학은 현대의학에 표피적인 흡수 말곤 될 게 없을 것이다. 이들은 현대의학의 족보를 잘 모른다. 양의술 중에서 아무리 변변찮은 거라도 좁게는 화학이론을, 넓게는 과학철학을 벗어나는 게 없다.
12)현대의학이 내세우는 '무작위 양측 맹검'증도 요소 환원주의 하에 성립한다. 해당 약 성분의 생화학 효과만 적확하다면 어느 환자에게든 목표 (인체라기 보단)병증에 '보편' 효과를 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개별 인체의 유기적 특성 및 삶의 양식과 해당 약 성분과 자연의 피드백 간의 상생상성하는 전일적 관계는 일단은 무시된다. 그렇게 해서 높은 확률의 즉물적인 확실성을 얻었지만, 현대의학사는 항생제가 내린 징벌을 기록한다.
[부분을 알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이건 팩트인가? 아니면 진리인가? 아니면 과학인가? 자연법칙을 거르려는 하나의 창이다. 현대의학의 프레임은 환원론을 통해 강도높은 보편주의를 바탕에 깔고 난 다음에야 차이를 예외로 둔다.
13)환원론에 바탕하지 않는 의술을 환원론으로 검증하면 의술의 원리에 바탕한 효과가 뭉텡이로 잘려나갈 것이니 온전한 검증이 될 순 없다. 무작위 양측 맹검이 의학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과학적 검증이라며 한의학에 강매해선 안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현대의사가 이에 불만을 가진다면 그들의 빽인 과학철학으로 달려가 환원론을 유일무이한 과학의 창으로 선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4)한의학계는 양의학이 제안하는 의료일원화에 합의하지 못한다. 흡수합병책엔 한의학적 가치의 발전이 아닌 소멸만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한의학의 이론 모델과 한의학의 검증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나 기와 오행은 너무 낡고 너무 오남용 되는 개념이다. 동양철리는 크게 진보해야 한다. 무엇이 버릴 구습이고 무엇이 이을 전통인가?
예컨데, 한의학은 장상[organ symbol, 기능 단위지 해부학적 장기(organ) 자체는 아니다]에 대해 왜 꼭 오행설을 따라 다섯개의 행(行, going)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대거나 도태시키고 장상들 간의 기능성이 증가/감소하는 피드백을 어떤 수리이론으로 정리할지에 대해 공통약속을 정할 필요가 있다.
15)대의명분을 위한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한국의 양의학은, 한의학은 깊이 있는 검증을 하지 않고 쓴다 탓하는 게 아니라 한의학이 검증 모델을 만들지 않음을 탓하고 만들어진 검증 모델을 비판 검토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물론 양측이 대의명분에 대한 공감을 가지고 악수를 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이 과정엔 학문이 아니라 정치에 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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