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Text

군주론을 보는 두 관점

pain_ 2010. 7. 27. 01:51

(1)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비루트를 정치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물론 그의 비루트 개념은 전통적인 덕에 대한 이해와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정치적 의미를 갖는 행위는 '역사적 실효성(historical efficacy)'의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물론 정치 현실 속에서의 행위는 운(Fortuna)의 여신에 의해 좌우되는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러나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과 역량, 신중한 판단력이 정치적 행위자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강조한다. 비트루는 혼독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질서는 시민들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기초가 된다.]

-정치학의 이해-



(2)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 아닙니다. 그저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게 좋다고 일러주는 방법론일뿐이죠. 아니, 이게 폄하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실천적인 영역에서의 정치/처세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오늘날에도 영향을 받을만한 사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거지요. 다만 수많은 사람들은 '군주론'이라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자극적인 테제에 속았지요. 그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지난세기동안,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근거없는 찬양과 근거없는 악평 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네, 그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부끄러워 찬양할수밖에 없는 그 딜레마, 말이지요. 마치, 지금 조정웅 감독에 대해 떠들어대는 저처럼 말입니다.]

-팟저-

==

오늘날 교양인들에게 신학은 왜소하고 추하며 잊혀진 난장이에 불과하다. 반면 중세유럽에 신학은 거인이었고 신학과 정치학이 교회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다. 군주론은 신학과 정치학의 이음메에 처음으로 메스를 들이댄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의 자극적인 테제는 역사적 현장성이 증발한 뒤에 군주론을 본 후세의 관념일 뿐이다. 군주론의 테제는 '신학은 정치와 별개다'와 '당위와 현실은 다르다'에 있다.

공화주의자 마키에벨리가 받아왔던 수많은 찬사와 악명 역시 신학과 정치학이 결합된 신국론적 세계관이 부숴지는 와중의 감정적 파편을 뒤집어 씀에 따라 얻은 것이다.

1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형이상학적 국가관을 먼저 제시하는 플라톤과 같은 고대의 정치학자를 비평하는데 이들의 이상국가론이 신국론의 바탕이 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

-군주론 15장-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며, 목적이 다르니 수단도 다르다. 군주론의 포인트는 중세유럽의 역사에서 정치행위에 대한 다른 목적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지, 목적과 수단의 가치를 저울질 하는 관념적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불가피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선 무력 또한 정의롭다고 주장했지만 객관적 상황이 아닌 자의적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지 아닌지엔 별 관심이 없었다.

나아가 현대의 교양인은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정치의 목적-실제하는 혼돈의 종식과 질서의 창조-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군주론에서 스킬적 측면만을 읽기 쉽다.



문사철에서 사와 철을 배제하다면 군주론 텍스트는 비역사화되어 서구 근대 정치학은 왜 군주론에 대한 비평에서 시작되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할 수 없으며, 마키아벨리는 땅따먹기 하는 군주를 보필하는 삼국연의적 모사꾼으로, 군주론은 프린스 메이커를 위한 실용서로, 군주론의 파격은 '목적에 따른 수단의 합리화"로 이해될 뿐이다.




학적 경영학이든 통속 경영학이든, 역사적 뿌리가 얕은 경영담론에서 군주론은 리더쉽의 원칙을 다룬 뛰어난 고전으로서 받아들여진다. 경영학적 마인드가 알게 모르게 주도권을 쥐게 된 오늘 날 (2)와 같은 태도로 군주론을 해석하는 방식이 일반인들에게 종종 보인다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양인이 취할 해석은 아니며 특히나 인문적 교양인이 취할 해석은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역사 연구를 통해 이해한 정치세계는 순환적인 과정을 겪는다. 로마사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한 국가의 순환을 왕정에서 무정부상태에 이르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한 국가가 운이 좋은 경우 탁월한 군주의 비르투에 의해 이 과저잉 다시금 반복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정치체제가 필연적인 결함을 가짐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불안정한 것으로 파악한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공화정은 이러한 불안정을 최소화하고 안정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화정이 수립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군주의 역량이 요구되며, 이후 공화정이 부패되는 경우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 또한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학의 이해-